서울문화재단 ‘같이 잇는 가치’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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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같이 잇는 가치’ 포럼
  • 배재민 기자
  • 승인 2019.06.07 13:17
  • 수정 2019-06-07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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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면 전공자들도 한 번에 답하기 어렵다. 설령 답하더라도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다. 예술의 역사는 유구하게 길고, 매체의 발전이 만든 가지는 빽빽하기 때문이다. 그럼 질문을 바꾸어서 ‘예술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답변자마다 답은 갈리겠지만 비교적 수월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만큼 예술의 목적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모든 다양한 답을 묶을 수 있는 답이 있다. 그것은 작가와 수용자 사이의 소통 그리고 공존이다.
 
 
 
장애예술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고 공존을 도모하는가?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한 ‘같이 잇는 가치’는 ‘일상의 공존’과 ‘창작을 위한 공존’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장애인이 예술을 매개로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예술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공존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 이야기했다.
 
 ‘소통’과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술의 명칭을 ‘장애예술’로 규정하는 건 또 하나의 선나누기로 보일 수도 있다. ‘창작을 위한 공존’의 사회를 맡은 김원영 변호사는 이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회에서 장애인이라고 특정된 사람들이 있었다. 경계가 불분명한 지점도 있지만 대체로 장애인이라 불린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했을 때 사람들이 비웃거나 마음 좋은 얼굴로 흐뭇하게만 보았다. 아직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예술을 다르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과도기적인 표현으로 장애예술이라고 하겠다. 한편으론 장애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뭐 어때?라는 마음도 있다. 내가 장애인이고, 창작자고 그래서 장애예술을 한다고 말을 하는데 거기에 부끄러움이 있을 필요가 없기에 장애예술이라고 칭하겠다.”
 
 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창작그룹 비기자의 최선영 대표는 “예술은 결국 다양성과 실험과 발견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던 삶이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극”이라고 말한다. 
 
예술로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가들
 
 일반적으로 창작과정은 세 가지 단계로 나뉜다고 말한다. 1. 구상한다 2. 만든다 3. 공개한다. 구상하기와 만들기는 예술가가 자신과 치열하게 소통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작품을 공개하지 않으면 자기만족에 그친다. 예술은 수용자들에게 공개됨으로써 생명력을 가진다. 작품 공개는 나의 세상과 타인의 세상이 만나는 지점이다. 지금 소개하는 두 장애인예술가들은 작품을 공개함으로써 비장애인들에게 그들이 장애라는 틀에 갇힌 사람들이 아닌 독립된 개인으로 바라보게 한다. 
 
정은혜 발달장애인 캐리커쳐 작가
2000여명의 개성 있는 얼굴
 
▲ 발달장애인 캐리커쳐 작가, 정은혜
 
 발달장애인 가족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학교를 졸업해도 일할 곳이 많지 않다. 그들의 세상은 좁다.
 
 정은혜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는 정은혜 작가에게 자신의 화실에서 월 30만원을 주고 청소일을 주었다. 하지만 정은혜 작가는 청소는 안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현재 그는 가족 중 유일하게 그림으로 돈을 버는 전업 작가다. 
 
 정은혜 작가는 매월 셋째 주 주말, 경기도 양평의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쳐를 그린다. 정은혜 작가는 마켓에 온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본 후 캐리커쳐로 그린다. 작가는 지금까지 2000여명의 사람들의 미소를 그렸다. 
 

▲ 김석환님 가족 외 99인(52.5cm x 52.5cm pencil on paper) 외 3점

정은혜 작가의 그림에는 사람 개개인의 개성이 있다.

 
장차현실 작가는 “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성과 그 속에 넘쳐나는 사람들의 관계성은 은혜를 발달장애인 작가로 성장시키는 아카이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은혜 작가의 창작 활동은 그의 시선강박증과 말더듬현상을 없애고 이가는 소리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엔 미소가 생겼다. 
 
 정은혜 작가의 그림에는 사회 통념적으로 말하는 이상적 아름다움은 없다. 그가 그린 인물화는 개인의 개성을 부각시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래서 작가가 그려준 사람들은 그림을 받고 다들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림이라는 도구가 정은혜 작가의 삶과, 그림을 받은 사람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한승민 발달장애인 작가 
경험에서 나온 개인의 이야기
 
▲ 발달장애인 작가, 한승민
 한승민 작가의 작품은 얼핏 보면 추상화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초현실주의 작품, 또 다르게는 잘 짜여진 디자인 작품 같이 보인다. 
 
 한승민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그가 인상 깊게 본 영화나 만화 혹은 장소를 레퍼런스로 사용했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작가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 Halloween (Acrylic on canvas 91x73cm, 2018)

한승민 작가가 학창시절 친구들과 에버랜드에서 할로윈 축제를 구경한 경험을 토대로 구성한 작품이다. 그날의 기억은 작가에게 신나는 축제라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한승민 작가는 그날을 생각하며 알파벳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그림 형식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또한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화폭에 화려하게 수놓은 형형색색의 물감은 수용자들에게 이루 다 표현하지 못 할 감정을 부른다. 
 

▲ Animal Cube (Acrylic on canvas 91x73cm, 2018)

애니멀 큐브는 작가가 동물의 몸을 재미있고 다양하게 그리고 싶어서 작업한 그림이다. 다양한 동물들이 개성 있는 표현방식으로 묘사됐다. 한승민 작가는 관객들이 애니멀 큐브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술 작품을 보는 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수용자 자신의 적극적인 해석과 창작자의 해설을 들으며 의도를 파악하는 것. 한승민 작가의 작품은 두 가지를 다 포용한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이면서도 일상적이기에 수용자들은 부담 없이 그의 말에 공감하며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작가가 살면서 느낀 감정이 개인의 감정으로 치환된다. 한승민 작가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그림을 통해 관람자들에게 묻는다.
 
 “저는 제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 그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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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존을 도모하는 사람들
 
 예술은 일상 속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좋은 예술은 수용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의식을 고양한다. 예술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선을 없앨 수 있을까? 지금 소개하는 작가들은 예술을 통해 그 선을 없애는 사람들이다. 
 
엠마누엘 사누, 고권금 (쿨레 칸) 안무가
‘자존’과 ‘독립’을 위한 춤 
 
▲ 노들장애인 야학, 엠마누엘 사누, 고권금
 
 춤은 몸의 언어다. 육체를 통해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엠마누엘 사누와 고권금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춤 수업을 통해 장애인들이 자신의 몸과 관계를 맺고, 나아가 사회와 관계 맺기를 도모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립의 힘을 길러준다. 
 
 이들은 우선 춤을 통해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커뮤니케이션 서클’이라는 원을 만들고 참여자가 함께 춤추고 싶은 사람을 원안으로 초대한다. 그렇게 춤을 추다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나온다. 엠마누엘 사누와 고권금은 그 스타일을 확장시킨다. 
 
 “춤으로 자신의 존재를 사회 속에서 드러내고 느끼며, 우리 모두 같은 인간이란 가치를 사회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노들야학에서 그들에게 춤을 배우는 학생들은 음악과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솔직하다. 이는 예술의 기본 태도다. “이게 나야”라는 선언. 
 
 “당신이 사회에서 누군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춤을 출 때에는 그를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같이 춤추게 될 겁니다.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춤출 때 각자의 에너지들이 불꽃 튀듯 만나고 내 속으로 훅 들어옵니다. 그 순간, 당신은 바로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에너지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굴러라구르님(김지우)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 이야기
 
▲ 유튜버 굴러라구르님(김지우)
 
 지금까지 다양한 미디어 매체들은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며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낭만화한다. 유튜버 굴러라구르님은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는 묻는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건 비장애인이 된다는 말일까요?”
 
 장애 극복 서사가 위험한 것은 평범한 장애인들을 노력하지 않는,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는 점에 있다. 굴러라구르님은 그래서 장애에 의미를 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도 제 영상을 보면서 울었다든가, 살 힘을 얻었다는 분들을 보면 이해가 안 돼요. 이런 분들은 장애인의 예술은 늘 교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장애인의 이미지에 익숙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예술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예술이요.”
 
 굴러라구르님이 하는 작업은 장애를 그냥 사회의 특별한 존재가 아닌 사회의 일부로 인식시키는 작업이다. 공존은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볼 때 성립된다. 그는 묻는다. “아직도 장애인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셨다면, 한 번쯤은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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