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보듬는 건축, 밀리그램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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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보듬는 건축, 밀리그램 디자인
  • 배재민 기자
  • 승인 2019.08.09 09:32
  • 수정 2019-08-09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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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건축에 장애인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 설계 적용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어 간다. 대표적인 배리어 프리 설계 건축은 휠체어가 출입하기 원활하게 하기 위한 문턱 없애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부착 등이 있다. 배리어 프리 디자인의 대부분은 장애인들의 물리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문득 물리적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들뿐만 아닌 심리, 감각적으로 예민한 정신장애인들이나 자폐장애인,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건축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심리적 안정을 주는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을 신경건축학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신경건축학은 비장애인들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밀리그램 디자인’은 장애인들과 비장애인 모두 아우르는 건축을 지향한다. - 배재민 기자

 

 

“장애인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은 모두가 안정될 수 있는 공간”

밀리그램 디자인 조명민 대표는 원래 음악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를 건축으로 이끈 건 대표의 아들이다. 조명민 대표의 아들은 자폐성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는 아이를 키우며 물리적 환경이 자폐아이들과 발달장애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 건축 공부를 시작했다.

각자가 가진 감각의 그릇은 다르다

시작은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조명민 대표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관찰했다. 대표는 아들의 ‘감각적인 특성들’을 가장 많이 보았다. 그가 제일 먼저 본 아이의 모습은 아무 소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눈과 귀를 막는 행위였다. 왜 아이가 귀를 막나 관찰하니 집이 비행기 항로에 걸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행기가 지나가기 전, 멀리서 비행기 등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귀를 막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오는 소리가 너무 고통스러워 소음을 견디기 위해 눈과 귀를 막은 것이다.

“이런 행위들은 비장애인들이 보기엔 많이 이상하죠. 우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귀를 막으니까요. 그래서 대부분 부모들은 원인도 모른 채 보기 싫어서 혹은 부끄러워서 하지 말라고 윽박지릅니다. 아이는 견디기 위해서 하는 행동인 데도 불구하고요.”

조명민 대표의 아들은 시각적인 면에서도 예민했다. 티브이를 볼 때 째려본다. 많은 자극을 필요할 때 옆으로 째려보면서 최대한 불편한 상태에서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한다. 편하게 안정된 상태가 아닌 불편한 상태에서 정보를 받아들여 감각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많은 자폐장애인들이 행하는, 비장애인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행동들, 소리를 지르거나 귀를 막거나 하는 행동들은 자신의 감각들을 견디기 위해 하는 행위다.

조명민 대표는 자폐아이들의 감각체계를 알고 싶었다. 대표는 자폐아이들의 감각은 워낙 독특해서 비장애인들과의 감각체계가 많이 다를 것이라는 가설 하에 뇌파 실험을 실시했다.

자폐장애인 30명, 발달장애인 30명, 비장애인 30명의 뇌파를 찍었다. 실험 결과는 그의 인식을 바꾸었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의 감각체계가 동일하게 나타난 것이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감각에 대한 반응이었다. 비장애인들이 5로 반응하는 감각에 자폐아이들은 8-10으로 반응하고, 비장애인들이 2에 반응 하는 걸 아이들은 -10, -15에 반응하는 차이였다. 조명민 대표는 이를 감각의 그릇으로 비유했다.

“어떤 사람들은 감각의 그릇이 크고 어떤 사람들은 작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각이 넘쳐서 흐르고 어떤 사람들은 감각을 채워 줘야 합니다. 자폐장애인들은 그릇의 크기가 다양하고 채워지는 속도도, 넘치는 것도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이걸 견디기 위해 우리가 봤을 때 이상하다 싶은 행동을 보이는 겁니다. 모두 다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던 겁니다.”

이는 장애아이들의 감각이 비장애인들보다 단지 더 예민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결국 조명민 대표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장애인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은 모두가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밀리그램 디자인이 설계한 복지관의 내부

감각을 충족시키는 디자인

조명민 대표는 자폐장애인들마다 가진 감각의 그릇이 다르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은 모두를 충족시켜야 한다. 대부분은 다양한 감각의 그릇에서 보편적 특성을 찾아내 그것을 토대로 디자인을 설계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조명민 대표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보편적인 것을 찾는 게 아닙니다. 감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해야 하기에 이용자가 자신의 감각에 맞추어 조절이 가능해야 합니다.”

▲ 일반적으로 파란색은 균형과 조화의 색으로 사람의 신경 흥분을 가라앉혀준다

그는 우선 조명을 예로 들었다. 요즘 나오는 조명들은 조도, 채도, 색온도 다 이용자가 조절 가능하다. 자폐아이들의 그날의 감각 상태에 맞추어 빛을 조절하는 것이다.

또한 조명민 대표는 “자폐장애인들을 감각적으로 채워 줄 수 있는 복잡한 패턴과 밋밋한 패턴을 한 공간에 두어 공존하도록 만들었습니다.”고 말했다.

▲ 바닥에 다양한 타일을 깔아둠으로써 이용자들이 필요한 감각을 채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 시각적 자극이 필요한 아이들은 복잡한 패턴 앞으로 향하고 감각을 차분하게 해야 하는 아이들은 밋밋한 패턴 앞으로 이동한다. 각자 필요한 공간으로 아이들이 향하게 놔두는 것이다.

자폐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감각을 어느 정도 파악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각성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이 벽지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감각, 심리 상태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낯선 환경도 편안하게 만들기

조명민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이나 극단적 감각을 지닌 자폐장애인들은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놀이동산의 귀신의 집을 예로 들었다.

“놀이동산의 귀신의 집은 들어가기 전부터 무섭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알바들은 무섭다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어떤 귀신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어디서 나오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다 동료 알바가 튀어나와도 흠칫 놀라겠지만 금방 넘어 갑니다. 예측이 가능하면 공포는 사라집니다. 하지만 자폐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들은 처음 가는 공간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니 두려움이 강합니다. 그렇다면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모든 복지관을 똑같은 디자인으로 설계하는 건 불가능하니 공간은 다를지라도 정보를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픽토그램(그림문자)을 통일하면 좀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복지관의 모든 방 앞에는 명패가 달려 있다. 명패에는 아이들이 글을 읽지 않고도 유추할 수 있는 간단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를 픽토그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그림문자들을 그저 예쁘게 만들려 하다 보니 디자인이 복잡해진다. 어떤 픽토그램은 너무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니 한눈에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렵다. 픽토그램은 순간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조명민 대표는 실험자 3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16종의 픽토그램을 개발했다. 대표는 적어도 서울시 장애인복지관에서 공용으로 그림문자를 사용하게 만들어 아이들이 어느 복지관을 가도 정보를 빨리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설계도와 최종 건축

모든 건축이 설계도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축은 자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한 신경건축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도 크게 한몫을 한다.

비장애인들이 보기엔 노란색은 다 같은 노란색이어서 페인트를 사용하더라도 더 싼 페인트를 사용하게 된다.

결국 시공사가 다 완성한 후 도면대로 했다고 하면 시설 담당자들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재료들도 이미 다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제를 가지고와 담당자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담당자들은 자제를 잘 모르니 자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싼 쪽으로 유도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신경건축은 설계도대로 나오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설계도에 자제 명칭, 제상품 넘버, 조명 종류까지 다 적어서 줍니다. 하지만 가끔 시 담당자나 시공사에서 제가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 브랜드를 지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국 자료를 가지고 설득을 해야 하는데 신경건축 자체가 한국에선 생소한 분야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설득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밀리그램 디자인은 할 수 있는 경우 직접 시공을 하려고 노력한다.

▲ 작업하는 조명민 대표

4차 산업혁명과 신경건축의 미래

조명민 대표를 인터뷰하고 신경건축에 대해 조사해 보며 신경건축은 4차 산업혁명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다양한 분야의 융합이다. 신경건축은 건축과 심리학의 만남이기도 하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신경 건축은 사회복지분야, 심리학, 건축의 융합이다.

“건축 공부를 하고 나서 건축가의 시선에서 보는 복지환경, 물리적 환경하고 사회복지분야의 전문가들이 보는 복지환경, 물리적 환경이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대학을 또 들어갔습니다.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연구방향은 명확해졌습니다.

심리, 의학, 복지, 건축, 사운드, 향기 이 모든 것들이 신경건축에서는 중요합니다. 심지어 패션도 중요합니다. 선생님들이 어떤 옷을 입냐에 따라 자폐아이들의 감정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차분해져야 하는데 체크무늬를 입고 오면 안 되겠지요. 어떤 경우엔 아이가 패턴이 필요한데 선생님이 체크무늬를 입고 있으면 집중을 못하고 패턴만 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전 선생님들께 앞치마를 입으라고 얘기합니다.”

그는 아직 다른 분야에서 협업 제안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협업을 제의해 온다면 흔쾌히 같이 할 의향이 있다며 다양한 분야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감각이 편안한 집은 어떤 집인가?

 

조명민 대표는 인터뷰가 끝나고 자폐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지 간단한 팁을 알려주었다.


∎원하는 것의 충분한 충족

조명민 대표는 어느 포럼에서 자폐아동을 둔 어머니가 아이가 너무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며 이걸 어떻게 없애야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대표는 “아이는 충분히 집착하는 걸 느껴야 합니다. 그 아이는 부드러운 것으로 촉감을 충분히 만족시켜야 다음으로 넘어가게 되는 겁니다. 유사한 느낌이라도 충족시켜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벽을 계속 두드리는 아이에겐 두드림을 멈추게 하기보단 안전 쿠션을 달아 준다든가 소리가나는 장치를 달아 주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위의 강화까진 필요 없지만 충족은 시켜주어야 한다. 비장애인들이 보는 자폐아이들의 이상행동은 본인이 견디기 위해 참는 것이기에 빨리 치우는 것이 아닌 아이가 그 자극에서 넘어가는 시기에 맞춰 제거해야 한다.

 

∎안정적인 빛

자폐아이들마다 받아들이는 빛의 감각이 다 다르다. 그래서 전등은 색온도와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등을 사는 게 좋다. 등이 안 되면 스탠드도 좋다. 아이들의 그날그날 감각에 맞추어서 조명의 온도를 조절하면 된다.

 

∎방음

방음은 돈과 연관된 부분이 크다. 간단하게 방음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큰 돈이 든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도로 근처에 사는 아이들과 도로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아이들의 정서적 차이가 조금씩 있다. 방음을 충분히 하려면 돈을 많이 들여야 하기에 이사를 가거나 새 집을 구할 때 교통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차 소리가 덜 나는 곳, 소음이 덜한 곳으로 집을 구하는 것이 좋다.

 

∎벽지

벽지는 아이들이 집에서 가장 많이 보게 된다. 대체적으로 어두운 핑크색이나 보라색 계열이 안정감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짧은 시간에 안정감을 주는 색이다. 조명민 대표의 아들도 방 벽지를 핑크색으로 하니 잠을 잘 자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초록색을 고르는 것도 좋다. 초록색은 가장 단점이 없는 색으로 불린다. 이것도 저것도 고르기 힘들 때는 초록색을 선택하는 것이 제일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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