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정부에 Yes라 하고 침묵할 때, 우리는 Why를 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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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정부에 Yes라 하고 침묵할 때, 우리는 Why를 외칠 것이다.
  • 편집부
  • 승인 2019.06.28 17:34
  • 수정 2019-07-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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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보건복지부는 31년 만에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도’를 오는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장애등급제도는 장애인 서비스를 개인의 욕구나 사회환경적 특성으로 결정하지 않고 의학적 기준에 따라 부여된 장애등급에 따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의학적 기준에 따라 부여된 장애등급과 실제 사회생활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직접 관련이 없음에도, 국가는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차등 지원해 왔다. 장애인 개인의 요구, 생활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의료적 장애등급에 따라 서비스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장애등급제도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장애인복지서비스를 편리하게 제공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행정편의주의적 조치로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산물인 것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비롯하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수많은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등급제도의 폐해를 폭로하고, 장애인 서비스의 판정과 전달에 대한 효과적 지원 체계 도입을 요구해 왔다. 지난 5년간 진행된 광화문 천막농성 등 수많은 투쟁을 통해 장애등급제도의 문제점을 우리 사회에 알려냈다. 그 결과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장애등급제 폐지를 국민명령 제1호로 발표하였고,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었으며, 장애인복지법 등 관련 법령까지 개정되는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이제 7월 1일이면 장애등급제도가 폐지되고 장애인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 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6월 25일, 보건복지부장관은 오는 7월 1일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수요자 중심 장애인 지원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면서 장애인 관련 주요 서비스를 장애등급이 아닌 장애인의 욕구·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꼭 필요한 대상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가 구축되려면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지원할 수 있는 판정 체계가 구축되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상당한 재원을 확보하여야 하며, 새롭고 의미있는 공적 서비스가 확충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발표 자료 어디에도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실현에 필요한 구체적 대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보건복지부의 발표대로라면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달라지는 것은 활동지원서비스의 조사도구만 바뀔 뿐이다.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신청할 수 있는 체계, 다양한 공적 서비스 확보 계획,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예산 조달 방안 등이 빠져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등급제 폐지 조치는 장애등급 무늬만 제거하는 조치이며,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열망하는 맞춤형 복지 실현 조치라고 볼 수 없다. 허울뿐인 장애등급제 폐지 조치이며, 생색내기용, 전시성 정책일 뿐이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날 생색내기용 정책 발표도 모자라, 실망스러운 발언까지 쏟아냈다. 기자간담회 개최 전 진행된 5개의 특정 장애인단체와의 간담회 결과에 대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오늘은 장애인단체들 중에서 전국적인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5개 단체가 왔었습니다. 그분들이 오늘 여러 가지 건의사항도 하고 의견들을 주셨는데, 그 첫 번째가 우리나라에 장애단체가 많이 있지만 좀 더 대표성이 확보될 수 있는 장애인단체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해 달라는 그런 요청이 있었습니다. 오늘 오셨던 분들도 저희들이 여러 차례 만났지만, 소위 말하는 비법정단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시위를 한다거나 과도한 의견표출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의견표출에 너무 정부가 경도되지 말고 균형 있게 기존의 법정단체를 중심으로 대표성 있는 단체들의 의견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해 달라는 그런 요청이 첫 번째로 공통적으로 있었고요.”라고 답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이 말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시위를 하거나 과도한 의견을 표출한 비법정단체들은 그동안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을 이끌었던 법인격을 갖추지 않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들 단체들과 함께 그동안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를 주장하며 투쟁해 왔다. 또한 비법정단체들의 가열찬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장애등급제 폐지가 법제화되었고 정책으로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장관은 전국적 지분을 갖고 있는 대표성을 가진 장애인단체들의 의견이라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쳐왔던 단체들의 활동을 폄훼하고 이들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혔다. 또한 법정단체, 비법정단체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개념을 제시하며, 말 잘 듣는 법정단체들을 앞세워 말 잘 듣지 않는 비법정단체들의 정당한 요구와 의미있는 활동을 짓밟아버렸다.

 

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러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의 행태에 분노하며 장애인단체들을 법정단체와 비법정단체로 편가르기 하고, 장애등급제를 폐지시키는데 대표적 역할을 수행한 단체들의 소중한 활동을 폄훼한 것에 대해 공개사과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현재와 같은 장애등급제 폐지 계획으로는 맞춤형 장애인 서비스 지원 체제 구축이 어렵기 때문에, 보다 혁신적인 방안을 준비하여 발표해 줄 것을 촉구한다. 장애등급제라는 구시대적 유물 때문에 제대로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업었던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생색내기용 장애등급제 폐지 조치가 아닌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 제공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 구현 방안을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 완전하고 비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한 장애등급제 폐지를 원한다.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투쟁했던 장애인단체들을 폄훼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대안을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전국의 장애인과 그 가족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다

2019년 6월 2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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