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이들의 미래를 여는 특수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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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이들의 미래를 여는 특수교사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19.05.24 13:15
  • 수정 2019-05-24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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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스스로 교육권을 보장받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특수교사들을 만나 봤다. 아이들이 성장해가고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아이들의 미소에 행복을 느낀다는 한국판 설리반 들을 만나보자.

 

“대학시절 보조교사…운명처럼 특수교사직을 천직이라 생각”

김도현 선생님 / 인천동산고등학교

 

 

김도현 선생님은 인천 동산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이 신설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13년째 특수학급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수업에 보조교사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가 김도현 선생님을 특수교사로 이끈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3월부터 7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을 함께 했는데, 마지막 수업 날 함께 했던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이 제 손에 자신의 집주소와 엄마의 휴대폰 번호가 적힌 메모를 꼭 쥐어 줬어요. 놀러 오라고 말하면서요. 그때 정말 온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오면서 운명처럼 특수교사직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김도현 선생님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항상 새로운 걸 배우고 연구하며, 또 아이들에게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는 아무래도 졸업 후 취업 등 직업교육에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처음 특수교사직을 시작했을 때는 제과제빵이 장애인들의 직종으로 가장 선호됐었고, 얼마 전까지는 또 바리스타가 인기였죠. 하지만 사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 직종 외에 다른 직종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애인 직업교육의 한계이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이 새로운 일자리와 직업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찾아보고 연구하고 있어요.”

김도현 선생님은 동산고등학교의 장애인식개선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사와 비장애, 장애학생이 함께하는 연주동아리 ‘줄탁동시(啐啄同時)’가 바로 그 중 하나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안에서 쪼고 밖에서 어미닭이 함께 쪼는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의 뜻처럼 자연스럽게 장애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어울림을 통한 인식개선을 돕고 있다.

비장애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좀 더 새로운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김도현 선생님은 자신의 이러한 노력이 아이들에게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설명했다.

“제가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인생은 메이드(made)가 아니라 메이킹(making)이라고요. 결국 스스로가 결정하고 나아이에 교사로서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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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마사지해 주고 이야기 들려주고 이름 불러주는 것 자체가 교육”

소현화 선생님 / 인천단봉초등학교

 

어려서부터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해 주변에서 “너는 유치원 교사가 되면 잘하겠다.”라는 말을 들어왔다는 소현화 선생님은 처음부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특수교사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하셨거든요. 남의 자녀를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를 교육한다는 것이 힘들 거라는 걱정 때문이셨죠. 특수교육학과를 선택하고는 1년 반 동안 어머니와 냉전을 같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하시고, 저 역시 천직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어려서 외국 이민생활 때문에 한국어가 서툴렀던 소현화 선생님은 대학생활 이론 공부가 정말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거주지 주변과 대학 주변의 특수학교와 시설에서 진행하는 모든 캠프와 행사에 자원봉사를 지원하며 현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 것이다.

“대학 4학년 동안 했던 봉사와 실습이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의 기초가 됐던 것 같아요. 맹학교부터 지적, 지체학교에서 활동하며 노하우를 쌓은 거죠.”

인천단봉초등학교 중도중복장애 특수학급으로 부임한 것도 그녀 스스로의 결심이었다.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뭘 해줘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은연중에 수업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을 기준으로 두고 아이들과 함께 하려니 자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죠. 그때 대학부터 알고 지냈던 진짜 베테랑 특수교육 선배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분들의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아이들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손을 마사지해 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 자체가 교육이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현화 선생님이 이 곳에 와서 처음 했던 시도는 역통합교실이었다. 보통의 통합교육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비장애학생의 교실로 올라가서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 그녀는 비장애아이들을 특수교실로 오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장애인식교육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어색해 하고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그런데 딱 3일이 지나니까 교실로 들어서면서 아이들이 큰소리로 ‘안녕~’ 인사를 하고, 함께 하는 시간에도 편안하게 같이 프로그램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저도 놀랬어요. 그리고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죠. 사실 교육용 영상을 틀어주는 것으로는 진정한 인식교육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주 함께 하고 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학교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믿어요.”

소현화 선생님은 자기 자신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지만 자신과 함께한 장애, 비장애학생들이 그 공간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그 아이들이 또 다른 곳으로 가서 그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의 제 작은 노력과 진심이 꼭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오늘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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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직생활 30년…“아이들의 행복이 무엇보다 1순위”

이명숙 선생님 / 인천인혜학교

 

 

이명숙 선생님은 인터뷰 하는 내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퇴임시기가 오는 것이 겁날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감동이에요. 30년 가까이 교직에 있으며, 힘든 일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시간이 가는 게 야속할 정도에요.”

이명숙 선생님이 처음 특수교육을 했을 때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독립된 공간이 아닌 한 교실 귀퉁이에 공간을 빌려 쓰기도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또 교육방법도 많이 변화했는데, 과거보다 지금의 교육방법이 아이들에게 더 효과적이고 아이들을 위하는 것 같다며, 지금도 하나씩 배워나가며 아이들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행동수정’에 초점을 두고 아이들을 교육했다면 지금은 ‘긍정적 행동지원’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의 교육방법이 아이들에게 훨씬 행복을 주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행복이 무엇보다 1순위라고 말하는 이명숙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도 자신의 소신을 정확히 전달하고, 이해시킨다고 말한다. “사실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그래도 무엇인가를 하나 더 알고, 배우기를 바라시죠. 근데 그것 역시 저는 아이가 행복함을 느낀 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싫고, 교실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은데, 무슨 교육이 되겠어요. 그래서 전 부모님들께도 말해요. 제가 뭔가를 더 학습적인 부분에 대해서 더 가르치겠다라곤 말씀 드리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있다고요. 제 진심이 통해서인지 이제 부모님들도 저를 믿고 함께 소통해주시고 계세요.”

마지막으로 이명숙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물리적 통합이 아닌 ‘심리적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 진정한 의미의 평등에 대한 인식이 우리에겐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같은 교실을 쓴다고 해서 통합이 아니잖아요. 마음으로 이해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명숙 선생님의 또 다른 특이사항 중 하나는 가족 모두가 특수교육에 몸담고 있다는 점이다. 남편뿐 아니라 두 자녀도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임용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자녀들도 같은 꿈을 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녀가 교직생활을 얼마나 행복하게, 열정적으로 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를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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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통합의 첫 걸음이라 생각해요”

김명숙 선생님 / 인천용학초등학교

 

 

학교는 꼭 학습를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사회성을 배우고, 또래와 놀이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김명숙 선생님은 아이들의 부모님들께서 학교에 대한 인식을 조금만 바꿔주시면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수학급에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직도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비장애아이들의 수준으로 올라가길 바라세요. 그렇다보니 학습에만 관심이 많으신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달라요. 학교가 꼭 공부를 배우기 위한 공간은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혀야 하는 기본적은 사회성과 인간관계 등을 배울 수 있는 곳이고, 또 우리 학급 아이들에게 이러한 요소들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많아요.”

그녀는 자신을 생각을 전하며 과거 함께 했던 아이와 그 어머님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끔 부모님들께서 실무사공부를 하셔서 학교로 취업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과거에 제가 데리고 있던 한 아이의 어머님도 그때 그렇게 학교생활을 같이 하셨는데,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어 보고, 통장 정리도 해보고 이런 것들이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얼마전에 안부차 학생의 어머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어머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때 했던 다양한 체험활동 등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지금은 아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요. 제가 바라는 아이들의 미래는 그런 모습이에요. 학교 졸업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게 아닌 사회 속에서 자립하는 거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화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의미의 통합교육을 위해서 바라는 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명숙 선생님은 특수 학급에서든 자신의 교실에서든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이 하루 두 번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통합교육은 교실만 함께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그 아이의 존재를 이해시키고 함께 있음을 같은 반 친구들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통합이죠. 어려운건 없어요. 각반 담임선생님을 비롯해 아이들 속에 있는 우리 특수학급 친구들의 이름을 따뜻한 느낌을 담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요. ‘함께 하고 있다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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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교육,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세영 선생님 / 미추홀학교

 

 

이세영 선생님이 특수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처음은 ‘우연’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특수교육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함께 대학을 지원하자고 했어요. 학교 다닐 때 장애영아를 보는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은 있지만 뚜렷하게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친구 따라 강남 간 격인 거죠(웃음). 그런데 심지어 친구는 떨어지고 저만 합격한 거예요. 그렇게 특수교사의 길을 걷게 된 거죠.”

우연으로 시작한 특수교사의 길이지만 지금은 운명처럼 느껴진다는 이세영 선생님은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에 대한 질문에 초임시절 함께 했던 아이들이 가장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거였다.

“처음 교사를 시작했을 때는 특수교육 환경이 진짜 열악했거든요. 그때 자폐1급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감정기복이 심해서 학교생활을 많이 힘들어 했어요. 지금이야 치료제가 잘 나와 있지만 그때만 해도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친구도 많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현재처럼 프로그램과 학교 환경이 그때도 자리 잡혀 있었다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그 친구도 어쩌면 지금 취업을 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과거의 친구들이 생각도 나고 걱정도 되죠.”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이세영 선생님은 말했다.

결국 전공과를 통해 취업을 하든, 다시 집으로 돌아가든 결국은 다른 사람과 함께해야 하기에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으로 지금은 특수학교에 있지만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에서 근무했을 때를 회상하며, 학교에서부터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 돼야 함을 강조했다.

“사실 지금의 통합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비장애아이들과 동등한 위치로 만들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 중 가장 중요한 게 비율의 차이에요. 대부분의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 아이들의 수는 20명을 넘지 않아요. 한 학교에 2개 이상의 학급이 있는 것도 흔치 않고요. 1000명의 학생 중 10명 남짓이 장애학생인데, 그들의 목소리를 누가 들어주고 그들의 존재를 누가 인식하겠어요. 그래서 전 우리 아이들의 비율을 좀 더 높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학년 당 한 학급의 특수학급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있고, 그 힘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세영 선생님은 교육철학에 대해 “아이들을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우리 아이들이 능력의 차이가 있을 뿐 특별히 비장애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동네에서 마주칠 법한 아줌마처럼, 언니, 누나처럼 아이들을 대해요. 잘못한 게 있음 그만큼 혼도 내고 안부도 묻고요. 학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저를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식하고 배워 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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