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언제나 즐거운 우리 ‘라온제나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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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언제나 즐거운 우리 ‘라온제나오케스트라’
  • 차미경 기자
  • 승인 2019.03.22 13:07
  • 수정 2019-03-22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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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함께 희망을 연주하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인천시 부평아트센터 연습실에서는 웃음소리와 악기 연주소리가 문틈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기자가 라온제나오케스트라를 찾아가던 날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단원들끼리 서로 초콜릿을 주고받고 투닥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휘자님의 지휘봉이 시작을 알리는 순간 천진한 모습은 살짝 감추고 자신의 악기에 집중하며 합주를 시작하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전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습만이 보였다.

아이들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원곡 그대로 연주하는 게 목표

올해로 창단 8년째를 맞은 라온제나오케스트라의 시작은 동아리지원사업에 발달장애아이를 둔 어머니들이 요청을 하면서부터였다.

지난 2012년 인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동아리지원사업을 모집했고 그때 몇몇 분의 어머니들의 요청을 통해 6명의 단원들로 처음 오케스트라를 꾸리게 됐다.

현재는 강병준 지휘자를 필두로 △제1바이올린=이완희, 오종환, 정은우, 김동건 △제2바이올린=김건우, 염진선, 이현우, 박재현 △비올라=백승희, 이지웅 △첼로=오동한, 유은지, 백종민, 강승빈 △더블베이스=김지윤 △플롯=최훈, 박혜림 △클라리넷=김유경 △오보에=이준범 등 총 19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라온제나를 이끌어 가고 있다.

창단 때부터 함께하며 현재는 3년째 대표직을 맡고 있는 박해숙 씨는 지난 8년을 되돌아보며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의 라온제나의 모습을 보면 더없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저희는 처음부터 순수하게 우리 아이들로만 꾸려진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타 오케스트라를 보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조금 늦더라도, 완성도가 조금 낮더라도 아이들로만 이루어진 팀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하지만 박 대표는 그런 핸디캡을 안고 ‘그러니 이정도만 되도 이해하겠지’라는 생각을 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 아이들로만 구성되는 것 목표로 한 것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원곡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에요. 쉽고 간단한 곡만을 고른다거나, 기존의 곡을 쉽게 편곡하는 것이 아니라 느리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 함께 이루어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러한 어머님들의 바람과 또 단원들의 열정이 더해져서였을까. 동아리활동 때는 물론 2014년 자체적으로 독립한 후부터 지금까지 라온제나오케스트라는 100% 발달장애인들로만 활동하고 있으며, 원곡 그대로를 연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장애인 솔리스트와 함께하는 협연까지 할 정도로 우수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기연주회와 독주무대 준비

연주가로서 자립 꿈꿔

현재 라온제나는 악기 구입부터 강습료, 연습실 대여까지 온전히 개인의 사비로 이루어지고 있다.

단원의 평균 나이가 24세로 가장 막내 단원의 나이가 19살이다. 성인이 되다보니 외적 지원을 받을 기회가 더 적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안타까운 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개인의 연주자로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라온제나의 경우 정기 연주회는 물론 TV 출연을 할 정도로 실력과 인지도를 확인받고 있지만 자립을 위한 직업으로 연계된 단원은 거의 없다.

몇몇의 단원들이 다른 지역과 연계돼 직업을 구한 경우는 있지만 인천 내에서 매칭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다.

박해숙 대표가 라온제나의 다음 목표이자 바람으로 꼽은 것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능력은 단순히 ‘장애인이 이 정도 할 수 있어’ 정도가 아니에요. 장애 여부를 떠나서 실력만은 여느 연주자들과 다르지 않아요. 이러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여기서 머무는 건 너무 아깝고 인재적 낭비이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라온제나오케스트라는 올해도 여름 음악캠프를 비롯해 매년 해오는 정기 연주회는 물론 12월에 막을 올릴 향상음악회(독주) 등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그래 왔듯이 지난해 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공연으로 관객을 찾아갈 계획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찾고 발전시켜 그것으로 지역 내에서 자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자 복지일 것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즐거운 나’를 넘어서 우리가 그리고 함께 하는 사회가 즐거워지길 희망한다.

 

<인터뷰>

“말로 표현 못 할 감동 있어”

 강병준/라온제나오케스트라 지휘자

 

강병준 씨는 라온제나오케스트라가 처음 동아리 지원 사업으로 6명의 단원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지휘를 맡으며 함께 해오고 있다.    

발달장애의 특성상 반복을 통한 강습이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사실 더디게 진도가 나가는 것보다 아이들의 돌발행동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더 크다고 말했다.    

“연주회 날 비가 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악장 역할을 맡은 아이기 사라진 거예요. 심장이 덜컹했죠. 부모님이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결국 비에 젖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어요.(웃음) 이 외에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거나 옷매무새를 고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배우는 열정만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발전 속도만 보면 더 뛰어난 것 같아요.”    

사실 라온제나도 처음 시작할 때는 영화 O.S.T나, 팝 등 대중성 있고 다소 연주하기 쉬운 곡들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발디의 사계>부터 <베토벤 교향곡>까지 전문 오케스트라 곡을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이 역시 강병준 지휘자의 노력과 욕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에는 전통 클래식을 다루고 싶은 제 생각과 어머님들의 생각이 달랐어요. 어머님들은 클래식이 재미없고 어려우니 가벼운 곡을 하길 원하셨죠. 하지만 저는 이왕 오케스트라로 활동을 하는 만큼 ‘진짜’가 되고 싶었거든요. 재미있고 단순한 곡만 하면 처음에는 즐겁고 호응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한계에 부딪히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지금은 오히려 어머님들이 더 좋아하세요. 단순히 취미나 치료의 의미가 아닌 전문성이 더해지고 또 그것을 인정받는 모습에서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내년이면 10회째 정기연주회를 맞이하는 라온제나. 10회라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강병준 지휘자는 벌써부터 머릿속에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10회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나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벌써부터 내년 연주회가 기대돼요. 라온제나는 제가 처음부터 함께해서인지 정말 애착이 남달라요. 정말 자식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힘이 들거나 가끔 고비가 와도 결국은 손을 잡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제게 주는 에너지와 감동이 있기에 제가 이렇게 힘을 낼 수 있겠죠. 그리고 그들의 성장과 발전을 지켜보는 것 또한 너무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니까요. 지휘자지만 라온제나의 팬으로서 그들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어요.”
 

 

<인터뷰 2>

악기를 연주하면 기분이 좋아요

김동건(19)/라온제나오케스트라 바이올린니스트

 

김동건(19) 군은 라온제나오케스트라에 사랑스러운 막내 단원이다. 자폐성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동건 군은 어려서부터 미술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실력 또한 우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동건 군이 끝까지 마음을 둔 것은 음악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이올린으로 입시를 준비하며, 연주가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건 재미있어요. 합주를 하고 형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워요.” 동건 군은 음악이 어떤 점이 좋으냐는 질문에 ‘재미있다. 즐겁다’라는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표현이 서툴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동건 군은 ‘음악’과 함께 생활할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고 한다.

김동건 군의 어머니인 윤명혜 씨는 동건 군의 음악사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연습량을 예로 들었다. “입시를 준비하다보니 평소에도 4~5시간씩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요. 그런데 집에 오면 샤워를 후다닥 마치자마자 다시 연습방으로 들어가서 잠들기 전까지 연습을 해요. 저 같으면 집에 와서는 지겨워서라도 안 하고 TV를 보거나 할 것 같은데, 좋아서 하지 않는 한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니 윤명혜 씨는 무엇보다 동건 군이 라온제나와 함께하며, 밝아지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변화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원래도 만들기나 그림을 좋아하는 등 차분한 성격이긴 했지만 혼자서 하는 활동이다 보니 조금은 소극적인 성향이었어요. 그런데 라온제나에 입단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적극적이고 형, 누나들에게 먼저 가서 핸드폰 번호도 묻고 메시지도 보내고 하는 모습을 보면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동건 군이 음악을 시작한 지 올해로 딱 3년째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음악이 처음부터 동건 군에게 딱 맞는 퍼즐인 것처럼 하루하루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미 바이올린 연주로 수상을 한 적도 있으며, 올해 10월 예술의전당에서 연주계획도 잡혀있다.

“잔잔한 단조의 곡을 연주하는 게 제일 좋아요.”라고 말하는 동건 군은 인터뷰 도중 다른 단원들이 연습을 시작하자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 무리 속으로 가고 싶은 모습을 표하기도 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의 동건 군과 딱 어울리는 글귀인 듯 보였다.

동건 군의 바이올린 연주 멜로디에서 행복이 느껴지는 것은 활을 움직일 때마다 동건 군의 마음에도 같은 감정이 들어 있어서이지 않을까. 행복한 동건 군의 성장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의 성장을 말없이 응원하는 동건 군의 어머니 윤명혜 씨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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