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국가책임제’ 1년을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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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국가책임제’ 1년을 되돌아보며
  • 편집부
  • 승인 2018.10.25 10:44
  • 수정 2018-10-25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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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선정/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

 2018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치매환자를 돌보는 동료, 이웃, 친척을 어디서든 마주치며 살아간다. 80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게 되는데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어선 지 오래다.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은 생전에 몇 년은 치매를 앓을 수 있고, 결혼한 사람은 누구나 몇 년 간 양가 부모 네 분 중 한 분의 치매 수발을 들어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는 더욱 걱정스럽다. 향후 30년간 우리나라의 치매환자 수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2050년에는 현재보다 그 수가 4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보건복지부가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제1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치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을 본격화하였다. 그간 세 차례의 치매관리종합계획이 수립 발표되어 치매관리의 기반을 구축했다.

 2016년 발표돼 2020년까지 추진 중인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은 치매가족상담수가 신설, 치매전문병동 운영, 24시간 단기 방문요양 제공, 장기요양 치매유니트 설치 확대, 치매노인 공공후견제도 도입 검토 등 치매 치료 및 조호의 전문화와 가족 부담 경감을 위한 기반 마련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3차에 걸친 치매관리종합계획은 그간 주무부처인 복지부에서 기획과 추진을 담당해 왔으나 국가수반이 직접 나서 범정부 차원에서 국가치매관리계획을 공동 추진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 비해 기획의 범위나 추진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2017년 9월 발표된 치매국가책임제는 3차에 걸친 치매관리종합계획의 추진 주체를 부처 차원에서 범정부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지난 9월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된 지 1년이 되었다. 진료실에서 치매 어르신과 가족을 만나는 의사로서 아무래도 먼저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치매의 진단이나 치료에 드는 의료비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치매 대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기발견, 조기치료가 중요한데 그간 치매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뇌자기공명영상 검사나 신경심리평가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되면서 특정 나이 및 조건을 제외하고는 보험이 적용되어 진단의 경제적 장벽이 낮아졌다.

 진단과정에서뿐 아니라 치료과정에서의 의료비도 감소했다. 치매의 건강보험 본인 부담률은 경우에 따라 20~60%로 다양했으나 2017년 10월부터 치매환자 중 치료가 필요하고 경제적 부담이 큰 중증치매환자부터 건강보험에서 90%를 지원해 다른 중증질환처럼 본인 부담률을 10%로 낮추었다.

 종종 진료실에서 “병원비가 좀 줄긴 줄었나요?” 하고 여쭤보는데 “선생님이 산정특례를 받으라고 해서 그거 한 뒤로는 이전보다는 훨씬 낫지요.” 하고 감사인사를 들을 때는 내가 들을 인사가 아니라 민망하면서도 다행감이 든다.

 산정특례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매년 하던 신경심리평가 비용부담이 줄었다며 좋아하시는데, 그 어깨에 경제적 짐이라도 조금 줄었다니 내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다. 치매진단을 받고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줄어든 것은 장기요양제도 개선을 통한 또 다른 변화다.

 “아이고, 조사원만 나오면 얼마나 똑똑해지시는지, 거기다 워낙 움직이고 돌아다니시는 거야 젊은 저보다도 더 건강하시니까 등급이 안 나와요. 주간보호센터라도 가시면 좀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하는 하소연을 진료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었었는데, 이제는 장기요양등급에 인지지원등급이 신설되어 신체기능이 정상인 사람도 치매로 진단받으면 월 12회 한도 내에서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게 되면서 맞는 약을 드렸을 때 이상으로 표정이 편안해진 가족과 환자를 종종 만났었는데 이제 그런 가족을 더 많이 만날 것이라 생각하니 기쁘다.

 정부는 보건소 치매상담센터를 치매안심센터로 확대 개편해 전국에 256개의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였다. △정밀 진단검사 △치매 예방과 인지강화 교육 △치매 가족 카페 운영 등을 통해 센터를 지역 치매 관리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장기요양등급 대기자나 탈락자를 위해 주간보호 및 인지활동을 제공하는 치매환자 쉼터를 운영하는데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앞으로 치매안심센터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먼저 지역 현황과 특성에 맞는 치매안심센터의 다양한 운영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는 전국 256개 시군구 지역들은 인력, 시설, 문화 등 모든 기반 환경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경우에는 관리 지역도 넓고 관리 가능한 시기도 제한적이라 지역맞춤형 모델이 서둘러 마련되지 않으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의료비 보장성 강화, 장기요양제도 개편, 치매안심센터 설치 이외에도 치매국가책임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첫째, 치매진료 역량의 고도화가 지역 균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치매환자 가족에게 가장 도움이 절실한 시기가 바로 치매환자의 정신행동 증상이 심할 때이지만, 정작 이런 시기에는 그 어디도 선뜻 치매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정신행동 증상을 적절히 치료 관리할 수 있는 치매전문병동을 갖춘 요양병원을 서둘러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건강보험 및 요양보험 제도의 개편과 전문인력 양성이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재가 돌봄 서비스의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급여 등급을 받는다고 해도 지역 내 서비스 제공기관이 없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끝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될 치매 치료와 돌봄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는 치매연구개발에 대한 전향적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미국이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경제 부담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맞먹는 경제 위기로 판단하고 치매환자를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에 연간 2200억 원을 투자하고 있고 2018년 5월 약 4600억 원을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추가 배정하기로 하는 등 치매극복을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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