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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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 편집부
  • 승인 2017.09.21 09:50
  • 수정 2017-09-21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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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대학에 다니던 때 내가 억울했던 것 중 하나는 의무와 권리의 비대칭적인 구조였다.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며 꼬박꼬박 내던 등록금 고지서에는 도서관 이용료라는 명목의 적지 않은 금액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내가 도서관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점자책이나 음성도서 같은 것은 기대도 할 수 없었고 편의의 목적으로 설치된 몇 대의 컴퓨터에는 스크린 리더가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설치를 할 수도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신입생들에게 일괄적으로 징수되던 교재비도 나는 예외 없이 지불했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형태의 책은 한 권도 받아보지 못했다.
 실습기자재비를 포함한 그 밖의 다른 여러 분류들도 내게 보편적인 지불은 강요하고 있었지만 나를 포함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목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강의실 내에서의 학습권마저도 스스로의 눈물겨운 노력 없이는 작은 보장도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강의노트까지 공개해 주시고 교재 선정에서부터 각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몇몇 전공 교수님을 제외하면 눈 안 보이는 한 명의 학생이 당신의 강의실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신경 쓰는 교수님들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필수교양에 포함된 컴퓨터 과목이 추구하는 목적이 누구나 같은 컴퓨터 환경에서 똑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라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내겐 그 어떤 과제도 조금 다른 방법이나 수정된 모양으로 제공되지 않았다.
 담당교수님께서 내게 보여준 관심은 "점수는 알아서 줄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라는 아주 감동적인 값싼 위로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분은 어쩌면 다른 분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학기 동안 교수님과 눈 한 번 맞추지 않은 버릇 없는 학생이라며 D학점의 원인을 마지막 시간에 공개적으로 선포하신 분이나 답안지의 글씨체가 예쁘지 않다며 역시 D를 선물해 주신 두 교수님은 거의 매주 찾아가서 나의 불편함에 대해 말씀드리고 상의하던 분들이었다.
 주교재도 없던 내게 시험 당일 오픈북을 강요하시던 교수님도 제발 다른 수업 들으라고 통사정하시던 교수님도 분명히 내가 낸 등록금으로 월급 받아가시는 분들임에 틀림없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한 대학이지만 새 학기 새로운 교수님들과의 만남들은 지금 생각해도 내겐 가장 큰 부담이자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며칠 전 대학생이 된 제자 녀석에게 다급한 도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언젠가의 나처럼 필수교양으로 컴퓨터 수업을 듣게 된 그 녀석에게 부여된 과제는 '스크레치'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였다.
 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으면 어떤 보조프로그램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부여받은 그 녀석은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음악을 사랑하고 악기를 전공하려 들어간 대학에서 상상하지도 못한 벽을 마주한 제자의 심정을 난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슴이 아팠던 것은 20여년이 지난 지금이나 내가 다니던 그 때나 대학의 근거 없는 고집이 꺾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장애학생들이 입학하고 졸업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아직도 같은 액수의 등록금을 부여하듯 같은 모양의 수업을 필수라고 강요하는 것이 보편적인 가치이자 목적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대학은 매년 수천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이면서 그들 안의 작은 다름에 대해서는 특별히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같은 교정에서 같은 전공을 택한 학생들의 큰 그림은 같을 수 있지만 그것을 그려가는 과정과 방법은 각기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학생이나 특별한 학생들에 대한 조금 다른 과정들을 고민하는 것은 대학에게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최소한의 수학능력을 증명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대학은 그들이 진정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고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보편적이면서도 때론 개별적인 가르침을 제공해야만 한다.
 대학의 시스템도 서비스도 교수님들의 강의와 학생에 대한 응대마저도 같은 의무를 지불하는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교육의 불평등은 사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아주 위험한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이제 겨우 어른이 되어가는 작은 성인들에게 배움만큼은 노력과 비례한다는 믿음직한 대학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나의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하루 빨리 내 제자들에겐 믿을 수 없는 어이없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울먹이던 내 제자의 걱정이 나의 괜한 걱정이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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