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가 두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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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가 두려운 사람들
  • 편집부
  • 승인 2017.09.11 09:57
  • 수정 2017-09-1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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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 안승준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특수학교에 다니던 고등학교 때 나는 국가에서 마련한 장애인교육정책과 시각장애학교의 교육목표에 따라 해가 떠 있는 시간 대부분의 에너지를 안마와 침술을 배우는 데 쏟아야만 했다.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체력과 의지력 따위와는 전혀 관계없이 우리 모두에겐 주경야독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따라왔다.
 입학만 하면 대학에 붙여준다던 유명 입시학원은 우리에게 문을 열어 줄 생각조차 없던 시절이라 우리가 오로지 기댈 수 있는 건 대학생 형 누나들의 눈물겨운 학습과외 봉사였다.
 시대의 천사들을 만난 이후에도 우리에겐 또 하나의 통과해야 할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건 점자책의 수급이었다.
 일반적인 교재를 점자로 옮기려면 전문적인 점역사 선생님들에게 맡겨도 최소 몇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선배들이 제작해 놓은 몇 년 전 문제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출판사의 개정판 출시였다. 같은 출판사, 같은 이름의 교재를 서점에서 구입해 온 누나들의 책과 역시 같은 이름을 가진 우리들의 책은 다소 혹은 아주 많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점역을 해주신 점역사의 역량 부족도 아니었고 책의 저자를 잘못 본 탓도 아니었고 바로 출판사의 개정판 출시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점역과정을 거쳐도 출판사의 개정속도를 맞출 수 없었던 우리는 교육과정의 변화나 수능시험의 출제 최신 경향성을 포기한 채 점자책과 출판년도가 같은 책들을 헌책방에서 사재기해 놓는 것으로 최소한의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다.
 대학을 가고 교사가 된 이후에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 덕분에 언젠가 성서공부를 할 때는 나의 점자책과 같은 교리서를 찾기 위해 모든 그룹원이 헌책방 탐사를 다니기까지 했다.
 컴퓨터를 다룰 때에도 인터넷 서핑을 할 때도 시각장애인들은 비슷한 어려움 때문에 최신 소프트웨어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의 연구가 끝나고 관련 프로그램을 활용하게 되었다고 기뻐할 때쯤이면 발 빠른 개발자들은 새로운 업데이트로 우리와의 고류를 차단시켜버리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내놓아주신다.
 유명사이트들도 우리의 접근성 대책이 마련되는 동안 대규모 리모델링으로 처음과 같은 낯설음과 난감함을 다시 선물해 주고는 한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접근성 이슈가 부각되면서 어플리케이션 중에 시각장애인들의 사용환경을 고려한 것들도 종종 출시되고 있는데 이마저도 담당자의 교체 한 번만으로 모든 환경은 업데이트와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되던 친구들은 메신저 업데이트와 함께 연락이 두절되어버린 나의 행방을 걱정해야만 했고 배달 어플의 업데이트는 자취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야식선택권을 한 순간에 빼앗아가 버렸다.
 요즘은 신혼부부 친구들에게 새로움과 관련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들을 듣고는 하는데 주요 요지는 인테리어 공사나 이사와 관련한 것들이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완성된 집에 들어섰을 때 그들이 느끼는 첫 당황스러움은 열 수 없는 현관문에 관한 것이다. 디자인의 변화라고는 하지만 아무 소리도,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 터치스크린 도어록은 시각장애인의 접근을 막아버리는 아주 훌륭한 도구로 작용한다.
 어찌어찌 현관을 통과하더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또 한 번 집 앞에서 또 한 번 곳곳마다 제품마다 유행처럼 번지는 터치스크린이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낸다는 친구의 이야기에서는 서글픔마저 느껴진다.
 나도 요즘은 집안의 기기를 교체할 때 가장 유념해서 보는 것이 터치스크린 여부에 관한 것이다.
 최근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이나 베리어프리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서비스에서 제공보다 중요한 것이 지속성 혹은 연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늘 가던 미용실이나 중국집 하나만 없어져도 매우 당황스럽고 섭섭하지 않던가?
 애용하던 화장품이나 샴푸 혹은 먹거리가 단종되었을 때의 서운함, 오랫동안 사용하던 제품의 부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답답함을 알지 않는가?
 시각장애인들도 새로운 것 더 나은 것 더 많은 기능들 당연히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의 업데이트 소식이 들렸을 때 용기 있게 누르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오늘도 나의 스마트폰에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어플들의 기다림이 잔뜩 있지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려고 한다.
 새로움! 설렘! 변화! 이런 것들 너무 좋은 단어 아닌가? 한 발짝 더 걸어갈 때 획기적인 변화를 추진할 때 함께 가던 누군가가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할까에 대한 고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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